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하일 8세 (문단 편집) ==== 균열, 필사의 외교 ==== 1260년대의 제국은 베네치아와 겨루는 해군을 운용하면서 지역 수비를 담당하는 지방수비군을 두었고, 전선에 나갈 야전군을 따로 운용하면서 1만 미만 수천 단위로 3개의 전선에 동시에 파견했다. 거기다 [[펠라고니아 전투]]나 남부 그리스 원정에서 보듯, 제국이 작정하고 원정군을 조직하면 1만 수천을 넘겼다. 정예함이 예전만은 못했고 쉬이 집중하기 힘든 여건이었으나 어쨌든 군사력은 여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에도 한계가 왔다. 소아시아의 사기가 떨어지고 제국 정부의 관심이 유럽으로 쏠린 사이 튀르크 공국과 부족들이 1261년의 라오디키아 함몰을 시작으로 동부 국경을 본격적으로 넘어오기 시작한것이다. 유럽의 영토가 아직 복구 중이었고 심지어 전장이 되기도 하여 사실상의 인적·물적 기반은 소아시아 지역이었기에 이는 중대한 사태였고, 미하일은 소아시아로 군을 보내 방어선을 정비하고 튀르크족을 몰아내면서 국경너머로 응징원정을 가했다. 그러나 이들을 통제할 [[룸 술탄국]]은 통제력을 상실한채 분해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고 [[일 칸국]]의 위협에 튀르크인들은 비교적 만만한 서쪽으로 재차 넘어왔다. 유럽의 전선을 유지한 채로 소아시아에 투입할 여력은 없었고 사실상 제국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미하일은 외교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일단 1265년부터는 [[베네치아 공화국]]과 평화협상이 시작되었다. 동년 [[룸 술탄국]]의 상위 군주인 [[일 칸국]]의 칸에게 미하일의 딸을 시집 보냈고 1266년에는 불가리아의 상위 군주인 [[킵차크 칸국]]의 칸에게 다른 딸을 시집 보냈다.[* 다만 2명 모두 양녀 혹은 사생아였다고 한다.] 튀르크족을 억제하기 위한 이러한 일련의 외교는 이후 불가리아의 북방 전선을 안정시켰고 칸국들로부터 지원을 이끌어내는 등의 결실을 보았으나 당장 급한 동부 국경의 위기를 진압하는데는 별 효과가 없었다.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도 진행되었다. [[이단]]으로 규정되어 서유럽과 단절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교회 일치라는 카드를 꺼내들었으나, [[시칠리아 왕국]]을 중심으로 하는 '''[[비테르보 조약]]'''(1267년)이 체결되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기존의 적인 시칠리아, [[아카이아 공국]], [[아테네 공국]] 외에도 [[세르비아 제국]], [[헝가리 왕국]], [[베네치아 공화국]] 등이 참여하였고 '이단 황제를 내쫓고 정통한 [[라틴 제국]]의 황제를 복귀시키기 위한 십자군 원정'이 계획되었다. 에게해에서는 베네치아와, 남부 그리스에서는 아카이아 공국과의 소모전이 다시 일어났다. 더 이상의 전쟁을 감당할 수 없던 미하일은 유럽의 전선을 안정화 시키고 동부 전선에 집중하기 위해 교황청에 굽히는 자세를 취했다. 시칠리아 국왕 [[카를루 1세]]의 원정이 태풍으로 좌절되고 신임 교황 [[그레고리오 10세]]가 올라 교회 일치에 관대한 태도를 보이자 미하일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협상에 열성적으로 임했다. > 거룩한 로마 교회는 전체 가톨릭교회 위에 최고의 충만한 수위권과 우선권을 가졌다. 로마 교회는 이러한 권한을 사도들의 으뜸이요 대표인 복된 베드로의 존재를 통해 주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을 진정으로, 그리고 겸손하게 인정한다. 그리고 로마 교회는 무엇보다도 신앙의 진리를 수호할 의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신앙에 관해서 야기되는 논쟁들은 로마 교회의 결정에 따라 해결되어야 한다. > > > - 제2차 리옹 공의회에서 읽혀진 미하일 8세 팔레올로스의 신앙 선서 그렇게 1274년에 겉으로나마 교회 일치가 달성되어 외교적인 지위가 격상되었다. 덕분에 여력이 생기자 다시 알바니아의 시칠리아 세력을 밀어 붙였고 남부 그리스에 대한 대대적인 원정이 실시되었다. 지상전의 경우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와 외교적으로 굴복시키는 정도로 그쳤으나 해전이 대체로 승리로 끝나서 1277년에는 베네치아와의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